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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think different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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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4-17 16:33 조회3,0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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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think different 캠페인

 

 

미치광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부적응자들.

반역자들.

말썽꾼들.

네모난 구멍에 들어가려는 둥근 못들.

사물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현상 유지에 관심이 없다.

당신은 그들을 칭찬하거나, 반박하거나, 인용하거나,

불신하거나, 찬양하거나, 비방할 수 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들은 발명한다. 그들은 상상한다. 그들은 치료한다.

그들은 탐험한다. 그들은 창조한다. 그들은 영감을 불어넣는다.

그들은 인류를 진전시킨다.

어쩌면 그들은 미칠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빈 캔버스에서 예술을 보겠는가?

아니면 고요 속에서 한번도 쓰여진 적이 없는 음악을 듣겠는가?

아니면 붉은 행성을 응시하며 바퀴달린 실험실을 상상하겠는가?

우리는 이들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

다른이들은 이들을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천재라 부른다.

왜냐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While some may see them as the crazy ones, we see genius.

Because the people who are crazy enough to think that they can change the world,

are the ones who do.

 

바로 이 단어 “Think Different” 가 애플을 오늘날의 대단한 기업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회사에 미쳐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 철학을 오랬동안 끈기 있게 유지해온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이 철학은 많은 회사들이 흉내를 내었지만 말그대로 흉내였고 그들처럼 멋지게 이루거나 끈기 있게 펼쳐나간 회사는 거의 드물었다.

회사는 상품-물건만을 팔면 안 된다. 그런 회사는 결국 오래 가지 못한다. 회사는 확실하고도 명확한 비전과 철학이 있어야 하고 그런 철학을 상품에 담아 내어야 한다. 흔히들 국내에서 애플 회사를 평하길 그저 이쁘게 물건을 만드는 회사로 폄하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상하게 한국에서만 인정을 못받는 회사인거 같다. 하지만 정확하게 봐야 한다. 그들은 상품을 만들기에 앞서 확실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그 철학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0 Years of 'Think Different': The Ad Campaign that Restored Apple's Reputation

Tom Hormby - 2007.04.09

1996년 12월 20일, 스티브 잡스의 드라마같은 복귀 이후, 언론은 11년에 걸친 애플의 공백기간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그 대신 언론은, 주요 컴퓨터 제조업체로서는 최초로 주문별 구성으로 이뤄진 온라인스토어의 개장과, 유맥스(Umax)의 S900 맥클론으로 관심을 옮겨갔다. 유맥스의 이 클론은 파워맥보다 훨씬 저렴하면서 훨씬 빨랐다. 게다가 250 MHz NewerTech G3 프로세서 업그레이드도 가능한 디자인이었다.

 

 

애플 브랜드는 타격을 받았다. 한 때 애플캠퍼스에는 텔레비전 스튜디오(이름이 애플티비였다)도 있어서, 존 스컬리와 스티브 잡스, 쟝-루이 가세가 날마다 기술 문제에 대해 점잔빼고 말할 수 있었다. 그 때의 영화는 더 이상 없었다.

스컬리의 계승자인 마이클 스핀들러 시대 때, 애플 브랜드는 이미 악화일로에 있었다. 소비자용으로는 퍼포마나 파워맥, LC, 전문가용으로는 파워맥과 쿼드라, 센트리스, 파워북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성공한 모델은 일부에 불과하였다. 디자인상이야 계속 받았지만, 소비자나 전문가 모두의 컴퓨터였던 애플 II나 혁신적인 정보기기인 매킨토시 이상이 필요했다. 스티브 잡스의 성에 차야 했다.

 

 

느리긴 해도 스티브 잡스는 회사를 장악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우선 과제는 애플 이미지 혁신이었다. 대성공작이었던 씽크 디퍼런트(Think Different) 캠페인이 그 역할을 맡는다.

Apple's PR Problem

1985년 9월 13일, 잡스가 애플을 떠난 이후, 스컬리는 회사를 많이 변화시켰다. 우선적인 변화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그와 애플 이사진은 1984년 수퍼볼 때 나왔던 1984 광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당시는 잡스와 빌 캠벨(Bill Campbell), 스티브 워즈니악, 리 클로(Lee Clow, Chiat/Day의 디렉터)가 회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때였고, 1984 광고는 역사상 제일 유명한 광고에 올랐다.

 

 

그리고 1985년의 상황도 애플에게 썩 좋지는 않았다. 스컬리와 이사진은 레밍스 광고 또한 좋아하지 않았지만, 잡스와 잡스 팀은 다시금 광고를 강행하였다. 그런데 이 광고는 실패작이었다. 중간도 못갔다. 사람들이 광고 자체를 잘 알지 못했다. 게다가 나쁜 광고이기도 했다. 매킨토시 오피스와 매킨토시로 애플이 끌려 했던 사무직 종사자들에 대한 묘사 때문이었다.

 

 

스컬리는 그동안 애플 광고를 맡아 오던 Chiat/Day를 해고하고, 보다 전통적인 광고로 돌아선다. 추상적인 광고도 여전하긴 했지만, 브랜드 이미지보다는 사양이나 가격에 보다 초점이 맞춰졌다.

이미지를 덜 내세웠던 탓인지, 90년대 중반 애플의 운마저 다 해갔다. 뉴튼에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였지만, 뉴튼 프로젝트는 이윤을 못냈고, 1995년부터 1997년 사이에서만 수 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언론은 이러한 손실과 구조조정을 집중부각시켰다.

애플은 쇠퇴일로에 있었다. 스컬리 이후 두 번째로 CEO에 오른 길 아멜리오는 현금보유량을 늘리고, 비용절감을 하는 것 외에, 넥스트 인수를 결정내린다. 그는 넥스트의 중역들을 애플에 모셔와 높은 자리에 배치시켰다. 엘렌 한콕을 포함한 자기 사람들을 도우라는 의미였다. 잡스도 이사자리 하나와 함께, 아멜리오에게 직접 보고내릴 지위를 받았다.

 

 

잡스는 엉망진창 애플에 진력이 나 있었다. 특히나 제품 개발과 마케팅이 최악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쿠데타를 일으킬 생각이 있었다. (잡스는 애플에 새로운 이사로 영입된 아멜리오에게 접근하여, 마이클 스핀들러를 같이 쫓아내자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회사가 자기를 필요로 한다고 여기게 된다.

 

 

1997년 7월 14일, 잡스는 아멜리오에 대한 궁정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는 애플 이사진들에게 일장연설을 한 뒤, 아멜리오를 축출한다. 비록 스스로 CEO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잡스는 사실상의 CEO로 행동하였다.

 

 

잡스는 당시 애플 본부 빌딩이었던 City Center 3 안의 작은 사무실과 이사진 회의실을 점거하고는 애플의 연구 개발 삭감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이미 아멜리오가 프로젝트 350개를 50개로 줄인 상태였다. 잡스는 이 50개를 10개로 다시 줄였다. 종종 겹치기도 하는 복잡한 제품 라인도 간단한 제품 매트릭스로 변경하였다. 또한 "green lighted"라 불린 급진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Mac NC (for Networked Computer) 프로젝트였던 이 "그린 라이트"는 결국 아이맥으로 자라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구조조정도 애플을 확실히 되살려놓지는 못 하였다. 애플 이미지가 그동안 너무나 어두워져 있었다. 애플의 이미지는 IBM(혹은 마이크로소프트)이라는 골리앗 앞에 마주선 다윗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지루한 지도자와 역시 지루한 제품때문에, 지루한 회사가 되어 있었다. Real이나 Yahoo!와 같은 활력이 애플에게는 없었다.

이제는 잡스답다고들 하지만, 역시 그 때에도 잡스는 이 일을 남들에게 맡기기보다는 직접 개인적으로 해결해 보려 하였다.

New Marketing Strategy

잡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보이려 하는 광고회사 세 곳을 초대하였다. Chiat/Day의 디렉터 리 클로도 그 자리에 참석했었다. 1997년 8월 3일, 그는 새로운 슬로건을 선보인다. 씽크 디퍼런트였다. (아마도 IBM의 유명한 "THINK" 슬로건을 방불케 하는 슬로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맥을 사용하는 예술가들과 전문가들의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Electric Escape와의 인터뷰에서 클로는 드림웍스 SKG의 영화 편집자들이 맥으로 작업하는 장면을 보여주기 원했다고 한다.

 

 

잡스는 이 개념을 마음에 들어 하였다. 단, 드림웍스의 편집자들보다는 더 유명한 사람들이나 사상가들을 쓰기 원하였다.

잡스는 예전부터 흑백 초상화나 인쇄물의 팬이었다. 넥스트의 사무실 역시 고가의 안젤 애덤스의 포스터크기 인쇄물로 꾸며져 있었다. Los Gatos에 있는 잡스의 집 또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같은 잡스의 영웅의 흑백 초상화로 꾸며져 있었다. 그는 Chiat/Day와 함께 새로이 이 개념을 발전시켜 나갔다. 우선 Chiat/Day를 수석 광고회사로 정해 놓았고, 리 클로 또한 애플 캠퍼스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광고 자체는 전적으로 Chiat/Day 직원들이 제작(물론 맥에서)하였지만, 잡스(가끔은 마케팅부 직원들도 동참하였다)가 직접 과정마다 매회 검토하였다. 그는 City Center 3의 사무실과 Chiat/Day의 Venice 사무실을 위성으로 연결해서 메일이나 압축 파일이 아닌, 풀 비디오를 매번 검토하였다.

 

 

The Creative Process

Chiat/Day는 완전한 컴퓨터-기반의 작업 환경이었다. 잡스는 광고 캠페인을 결정내린 뒤, Chiat/Day에게 17일간의 말미를 주었다. 17일 안에 로스앤젤레스나 뉴욕과 같은 대규모 시장의 텔레비전 광과와 벽지 광고를 다 완성해야 했다.

평범한 고객(아멜리오 치하의 애플도 그러하였다)이었다면, 이미지 사용권을 구하는 것만 해도 오래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클로와 Chiat/Day 팀이 조안 바에즈(잡스의 전-여자친구)와 오노 요코(잡스가 San Remo에서, 요코가 Dakota에서 살 때, 둘은 Central Park 이웃이었다) 사진 사용권을 얻을 때 잡스는 특히 도움이 톡톡히 되어 주었다.

 

 

클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이들에게 접근했더라면, 광고쟁이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잡스가 직접 나서서 부르고 하자, 그는 컴퓨터 업계의 거물이자 문화 아이콘의 친구가 되었다.

 

 

이 텔레비전 광고는 Avid 4000 시스템과 어도비 AfterEffects를 사용한 매킨토시 시스템으로 제작되었다. 텔레비전 광고를 작업한 Jennifer Gulab 또한 인공위성 통신을 통해 잡스와 긴밀히 협력하였다. 그 둘은 매일같이 만나서 사용한 이미지와 음악, 리차드 드레퓌스(Richard Dreyfus)가 한 나레이션을 교환하였다. 사용하는 이미지는 대개 이미지 사용권과 사용 가능 여부에 달려 있었다.

 

 

드레퓌스는 Chiat/Day의 카피라이터, 크레이그 타니모토(Craig Tanimoto)가 작성한 자유시, "Here's to the Crazy Ones"을 읽어내려갔다. 광고 전반에 흐르는 시였다.

첫 번째 원칙은 광고 안에 제품이 안 나와야 한다는 점이었다. 클로 팀은 사용하는 예술가들 사진 사용에 신중을 기하였다. 돈을 받는 대신, 모든 참여자들에게 주어지는 돈과 컴퓨터 장비는 비영리 재단이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할 정도였다.

인쇄물 광고와 벽지 광고도 독특했다. 맥이나 일반적인 컴퓨터 잡지가 아닌, 패션 잡지나 대중지에 광고가 실렸기 때문이다. 컴퓨터 쪽이 아니면 컴퓨터 광고를 하지 않던 때였다. 그러나 Chiat/Day는 광고를 위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수 백곳을 대여하였고, 여전히 그러하고 있다.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들은 버스 정류장이나 대도시 주요 장소에 벽지 광고를 완전히 만들어보지 않았다. Jessica Schulman은 일단 모형물을 만들어서 이것을 거리에 비쳐보았고, 그에 따라 평가회의를 거쳤다. 물론 잡스와도 매일같이 인터넷을 통해 이미지와 의견을 교환하였다.

 

 

Reaction

씽크 디퍼런트 캠페인은 1997년 9월 28일 시작하였으며, 성공을 거두었다. "Power to be your best"와 같은 이전 주요 광고와는 달리, 언론의 평가도 사못 호의적이었다.

 

 

씽크 디퍼런트 광고는 일종의 분기점이었다. 이틀 후인 9월 30일, 잡스는 팔로알토 자기 집에 직원들 일부를 모아놓고 광고와 애플의 미래에 대해 연설을 하였다. 씽크디퍼런트의 평과 이미지에 대한 얘기였다. "우리 브랜드는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가치있는 것입니다. 90년대동안 잃어버렸던 애플의 반항적 이미지를 되살리는 데에 15초나 30초... 60초면 충분합니다."(DaveNet 제공)

씽크 디퍼런트 광고는 여러 상은 물론, 열광적인 지지 또한 받았다. 첫 번째 광고가 나간 뒤, 애플은 여러 유명인사들을 실은 포스터를 교실에 걸라고 공공학교에 보내기 시작한다. (파블로 피카소와 제인 구달, 론 하워드도 포함된 포스터였다.) 완전한 패키지를 수 백 달러에 판매하기도 하였다.

 

 

애플은 이 캠페인을 2002년까지 지속시켰고, 초창기 애플 소매스토어점 중에 "Think Different" 광고를 벽에 내건 곳이 있었다. 2002년, 애플은 광고를 씽크 디퍼런트에서 스위치로 변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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